문경원과 전준호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디어 설치 작가 듀오로, 협업을 통해 비디오, 사운드, 설치, 조각 등을 결합한 복합적인 서사 구조의 작품을 선보여 왔습니다. 이들은 영상매체를 단순한 시청각 장치로 사용하지 않고, 철학적 질문과 사회적 비판, 시적 이미지와 감각적 연출이 어우러진 복합적 미디어 설치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특히 그들의 대표작인 “뉴스프롬노웨어(News from Nowhere)” 프로젝트는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 인간의 노동과 기억, 문명의 재구성을 상상하며 서사 중심의 미디어 설치가 갖는 가능성을 실험합니다.
뉴스프롬노웨어 – 서사와 철학이 교차하는 미디어
2010년부터 진행된 장기 프로젝트 “News from Nowhere”는 문경원과 전준호의 대표작으로, 유토피아적 공간과 디스토피아적 현실 사이에 놓인 인간의 삶과 감정을 비주얼 서사로 풀어낸 미디어 설치입니다. 이 작품은 19세기 윌리엄 모리스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개념 아래에서 자본 이후(post-capitalism)의 세계를 상상합니다.
작품 속에는 말없이 반복되는 노동을 수행하는 인간 군상, 시간의 방향을 잃은 풍경, 정체된 도시와 폐허의 이미지들이 등장하며, 이 모든 장면이 마치 시네마틱 한 구성으로 설치 공간을 채웁니다. 이는 단순히 영상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에서 관람자가 하나의 서사를 ‘체험’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문경원과 전준호는 영상뿐 아니라 조각, 텍스트, 음향을 병치하거나 교차시키며 다층적인 감각 구조를 구축합니다. 이처럼 복합적 장치들은 단순히 서사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자의 감각과 경험을 통해 서사가 재구성되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전통적 영화나 연극과는 다른 미디어 설치만의 확장된 서사 경험을 제시합니다.
이미지와 공간의 결합 – 감각적 서사의 미학
문경원과 전준호의 작업은 시각적 미장센과 철학적 메시지를 정교하게 결합하는 점에서 독보적입니다. 이들은 카메라 구도, 인물 배치, 조명, 음향 등 모든 요소를 조형적으로 계획하여 정지된 화면조차도 회화적 깊이를 지니도록 구성합니다. 그 결과 영상은 단순한 움직이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유를 유도하는 ‘움직이는 회화’로 기능합니다.
특히 영상 속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대사 없이 몸짓과 움직임, 시선의 방향으로만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이는 침묵 속의 서사, 비언어적 감정을 강조하는 방식이며, 관람자 스스로의 해석과 개입을 요청하는 미학적 전략입니다.
이들은 설치 공간 구성에도 심혈을 기울이며, 영상과 사운드가 공간 속에서 유기적으로 흐르도록 연출합니다. 프로젝션이 벽면과 바닥을 넘나들거나, 스크린이 구조물과 결합되며 입체적으로 설치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영상은 단지 ‘보는 것’을 넘어 ‘들어가는 것’이 됩니다. 관람자는 마치 하나의 세계 안으로 초대된 듯, 서사를 따라가거나 역방향으로 해체하며 개입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전통적 회화나 조각의 정적 감상 방식을 넘어서, 동시대 미술이 어떻게 서사적, 감각적 체험의 장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입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 – 사회적 은유로서의 미디어
문경원과 전준호는 현실의 사회 구조와 이념, 경제 체제, 인간의 조건을 우회적으로 은유하며, ‘미래의 허구’라는 설정을 통해 오늘날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되비춥니다. 이들의 작업은 미래의 풍경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직면한 노동, 기계화, 소외, 정보 과잉, 감정의 단절 등이 교묘히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은유는 직설적이지 않고, 느린 화면 전개, 정제된 이미지, 서정적 사운드와 결합되어 관람자에게 감정적 반응을 유도합니다. 이는 감성적 사유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단순한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다층적 사고를 요청하는 설치미술의 진화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2015)은 한국 고전 문헌에서 유래한 시간·공간 개념을 바탕으로 미래적 공간 이동을 시각화한 작품으로, 아시아적 세계관과 기술 상상력을 결합하여 미디어 설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동서양의 철학과 미학, 현재와 미래,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한 예술 언어를 보여줍니다.
문경원과 전준호의 서사적 설치는 결국 관람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떤 구조 위에 놓여 있는가?”, “기억과 감정, 노동과 휴식은 미래 사회에서 어떻게 정의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관람자의 내면에서 서사가 계속 생성되도록 만듭니다.
문경원과 전준호는 서사와 미디어, 감각과 철학, 현실과 상상을 결합한 서사적 미디어 설치의 선두주자입니다. 그들의 작업은 단순한 기술적 영상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 이미지와 사운드, 텍스트와 침묵이 교차하며 관람자의 감각과 사유를 자극하는 예술적 경험입니다.
이들은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감성적인 서사로 풀어내며, 미디어 아트의 확장성과 서사성의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작가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문경원과 전준호의 작업은 동시대 설치미술이 어떻게 문학적이고 영화적인 서사를 시각예술 안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