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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지의 시간 조각과 공간 드로잉

by memo5983 2025. 6. 7.

사라 지(Sarah Sze, 1969~ )는 미국의 현대미술 작가로, 조각, 설치, 영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시간’과 ‘공간’을 조형적으로 탐구해 온 작가입니다. 그녀는 일상적인 사물들을 모아 복잡하게 조합한 설치 작업을 통해 관람자의 감각과 인식을 재구성하고, 기억과 시간, 움직임과 정지 사이의 관계를 시각화합니다. 특히 그녀의 작업은 ‘공간을 그리는 행위’와도 같아, 조각이자 드로잉, 건축이자 회화라는 경계를 넘나드는 복합적 조형 언어를 보여줍니다. 본 글에서는 사라 지의 작업이 어떻게 시간성을 구조화하고, 공간을 하나의 드로잉으로 전환하며 동시대 관람자와 소통하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시간을 구성하는 조각 – 조형으로 펼쳐진 흐름

사라 지의 작업은 일반적인 조각이나 설치와는 달리, ‘과정’과 ‘변화’라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그녀는 선풍기, 줄, 종이 조각, 가벼운 금속 구조물, 빛, 그림자, 영상 등 수많은 재료를 유기적으로 엮어,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이고 흐르는 구조물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구조는 전통적인 조각처럼 단단하고 완결된 형상이 아니라, 시간이 조각되는 과정 자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표작 중 하나인 “Triple Point”(2013,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은 일상의 사물들이 과학적 실험실, 관측소, 데이터 센터처럼 배열된 복잡한 설치물로, 관람자가 움직이며 시점을 바꿀 때마다 전혀 다른 장면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처럼 사라 지는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조각의 물성에 담아, 공간 안에 새로운 감각의 리듬을 불어넣습니다.

그녀는 작업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며, 관람자의 시선이 따라 흐르도록 설치를 구성합니다. 이는 고정된 시점이 아닌 유동적인 시공간을 반영하며, 현대인이 느끼는 시간의 분절성과 감각의 파편화를 시각적으로 조직하는 예술적 실천입니다. 사라 지의 조각은 시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물질로 번역하고, 감각적이기도 합니다.

공간 드로잉 – 사물로 그리는 선과 흐름

사라 지의 설치는 종종 ‘3차원의 드로잉’으로 불립니다. 그녀는 종이, 끈, 나뭇가지, 플라스틱, 빛 등의 재료를 사용해 선적인 구조를 만들어내며, 그 선들이 모여 하나의 조형적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조각보다 회화에 가까운 시각적 경험을 주며, ‘그리는 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합니다.

그녀는 “공간 안에 그린다”는 개념으로 작업을 설명합니다. 즉, 벽이나 캔버스가 아닌, 공간 자체가 하나의 화면이 되고, 그 안에서 선과 형태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관람자는 설치의 구조를 따라 시선을 이동시키며, 시간의 흐름처럼 감각의 리듬을 따라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Still Life with Time”에서는 물리적 조형물뿐만 아니라 영상, 프로젝션, 조명 등이 결합되어 빛의 그림자가 벽에 드로잉처럼 투영됩니다. 이는 조각, 회화, 영상의 경계를 허물고, 드로잉이라는 개념을 확장시켜 물질과 비물질이 공존하는 감각의 공간을 만듭니다. 그녀의 작업은 드로잉이 단순한 선 긋기를 넘어, 경험과 인식의 구조를 설계하는 행위임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설치물들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거나,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구조로 인식되기 때문에, 관람자의 위치와 움직임은 작업의 중요한 일부가 되게 합니다. 사라 지는 공간 안에 퍼져 있는 수많은 단서를 연결함으로써 하나의 내러티브 구조를 형성하고, 드로잉을 통해 감각적 사유의 장을 구축하게 합니다.

기억과 감각의 조형 – 현대인의 감각 지도 만들기

사라 지의 작품은 종종 ‘기억의 지도’, ‘감각의 구조물’로 비유됩니다. 그녀는 기술적, 과학적 이미지뿐 아니라 개인적 물건과 상징적 오브제를 사용해, 관람자가 자신의 기억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개별적 해석의 통로를 제공합니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감각의 누적과 해석의 다양성을 열어주는 전략입니다.

그녀의 작업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감각 구조에 대응하며, 정보의 과잉과 감각의 분절, 주의의 산만함 속에서 집중과 몰입의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일종의 ‘감각의 재구성’이며,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하나의 기억 장치처럼 변형시킵니다.

또한 그녀는 작품 설치 과정에서 주변 건축 구조와 조화를 이루도록 신중히 설계하여, 공간 전체를 하나의 통합된 예술로 구성합니다. 따라서 관람자는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며’, 감각의 이동과 시간을 함께 체험하게 됩니다.

사라 지의 미학은 ‘과잉된 사물성’이 아니라 ‘정제된 감각의 구성’이며, 동시대 예술이 어떻게 물질과 경험, 시간과 기억을 통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라 지는 시간과 공간을 조형적으로 엮어내는 독창적인 설치미술가입니다. 그녀는 사물과 빛, 영상과 그림자, 구조와 움직임을 통합하여 관람자에게 감각의 리듬과 기억의 흐름을 체험하게 합니다. 그녀의 작업은 고정된 조각이 아닌, 유동적이고 관계적인 예술이며, 동시대 미술에서 조각과 드로잉, 회화와 건축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적 실천입니다.

사라 지의 공간 드로잉은 단지 시각적 조형이 아니라, 감각적 구조이자 시간의 서사이며, 관람자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호출하는 ‘열린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예술이 감각과 시간, 기억을 어떻게 재조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예로, 디지털 시대의 조형 언어를 새롭게 우리에게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