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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의 수행적 붓질과 현대 수묵의 재해석

by memo5983 2025. 6. 5.

이강소(Lee Kang-So, 1943~ )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동양화의 전통과 현대미술의 개념을 결합한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그는 수묵이라는 동양의 고유한 매체를 현대적 조형언어로 재해석하며,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 ‘수행적 붓질’로 존재와 시간, 공간을 사유합니다. 이강소의 작품은 동양철학, 불교, 선(禪)의 사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비움’, ‘즉흥’, ‘순간성’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본 글에서는 이강소의 수행적 행위로써의 붓질, 수묵의 현대적 확장, 그리고 그 미학적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수묵, 행위가 되는 붓질 – 즉흥성과 수행의 조형

이강소의 작업에서 수묵은 단순한 회화적 매체를 넘어 하나의 ‘행위’로 기능합니다. 그는 종이에 먹을 칠하는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넓은 한지 위에 몸을 실어 즉흥적 붓질을 펼치며, 마치 춤추듯 물성과 속도의 리듬을 표현합니다. 이는 단순한 조형 표현을 넘어서, 정신적 몰입과 행위의 흔적을 동시에 담아내는 수행적 미학입니다.

그의 대표작들은 붓의 움직임이 아닌, 온몸의 동세와 에너지가 투영된 자국으로 구성되며, 화폭은 일종의 ‘기록된 시간의 장’으로 기능합니다. 즉, 화면은 사유의 공간이자, 존재가 통과한 자취로 남습니다. 이강소는 이를 “생각하지 않고 그리는 그림”, “마음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길”이라 표현하며, 동양적 무위(無爲)의 태도와 연결짓습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서구의 액션페인팅이나 퍼포먼스 아트와도 닮아 있지만, 그 뿌리는 선종(禪宗)의 직관성과 즉흥성, 그리고 동양의 기(氣) 개념에 있습니다. 그는 선비의 사유, 무위의 붓놀림, 단순한 반복 속에서 얻는 ‘순간의 진리’를 화면 위에 펼쳐내며, 수묵이 단지 전통 회화의 양식이 아닌, 현재적 감각과 직관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동양 회화의 해체와 재해석 – 고요함과 파격의 공존

이강소의 작업은 전통적인 동양화 형식에 대한 충실한 존중 위에서 출발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해체하고 확장합니다. 그는 ‘산수’나 ‘사군자’ 같은 고정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수묵의 본질적인 요소인 농담(濃淡), 여백, 물의 흔적 등을 중심에 둡니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형상 없이도 강렬하며, 전통적 아름다움과 현대적 추상이 공존하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화면 중앙에 휘갈겨진 붓질, 일견 무심하게 뿌려진 먹방울, 번짐의 흔적 등은 의도된 형상보다 감정과 직관이 전면에 드러난 구성입니다. 이는 선사들의 ‘달마도’나 ‘하필묵(下筆墨)’처럼 무심한 듯 단순한 형상이지만, 그 안에 오랜 수련과 직관이 응축된 ‘즉흥의 완성’이라는 동양 사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강소는 수묵을 통해 그 자체로 조형 요소가 되는 동양적 추상을 구현합니다. 물과 먹, 종이의 우연성과 의도 사이에서 형성되는 흔적은 자연의 질서와 무질서를 동시에 드러냅니다. 그 안에서 작가는 ‘고요한 파격’, ‘비움 속의 에너지’를 실현하며, 관람자에게는 시각을 넘는 감각의 확장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의 수묵화는 더 이상 정물적 회화가 아니라, 사건이자 현상이며, 하나의 ‘시간적 조각’으로 기능합니다. 이것은 전통 동양화와 현대 미술의 접점에서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회화이며, 재료와 개념, 행위가 일치하는 미학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보는 수묵 – 동 시대성과의 연결

이강소의 작업은 단지 전통의 계승이 아니라, 동시대 예술 언어로의 재전환을 지향합니다. 그는 수묵이라는 전통 매체가 동 시대성, 수행성, 감각성, 공간성 등을 내포할 수 있음을 증명하며, 한국미술 안에서 수묵의 현대적 존재 방식을 보여줍니다.

그의 작품은 미술관 전시장뿐 아니라, 대형 설치, 퍼포먼스적 드로잉, 야외 공간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어 왔습니다. 이는 수묵이 더 이상 액자 안에 갇힌 이미지가 아니라, 관람자와 공간, 시간과 관계를 맺는 살아 있는 매체로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이강소의 수묵은 글로벌 현대미술 담론 속에서도 주목받아왔으며, 동양성과 현대성의 융합 사례로 해외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추구하는 ‘몸의 철학’, ‘붓질의 수행’, ‘비움의 미학’은 서구 추상과는 또 다른 감각의 층위를 제공하며, 세계미술 속에서 한국 수묵의 차별적 위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는 재료에 내재한 동양적 시간성 ― 물이 스미고 마르고 번지는 과정을 통해 삶의 속도와 흐름, 존재의 유동성을 드러내며, 미술이 삶과 직결된 수행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감각은 디지털 시대에 더욱 귀중하게 다가오며, 이강소의 수묵이 단지 회화가 아니라 ‘살아 있는 행위’라는 점을 뒷받침합니다.

 

이강소는 전통 수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그것을 행위와 철학, 감각의 언어로 확장한 예술가입니다. 그의 수행적 붓질은 단순한 조형 행위가 아니라, 존재를 담는 제스처이며, 삶의 태도이자 사유의 흔적입니다.

그의 작업은 동양미학의 정수인 ‘비움’, ‘여백’, ‘즉흥성’을 동시대 미술 언어로 변환하여,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회화와 행위 사이를 가로지릅니다. 이강소의 수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예술적 수행이며, 그것은 단지 ‘보는 회화’가 아니라, ‘사는 예술’로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