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두(Jung Yeondoo, 1969~ )는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현실과 허구’, ‘사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를 탐구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시대 미술가입니다. 그는 특히 staged photography(연출된 사진)를 통해 개인의 기억이나 사회적 서사를 극적 장면으로 재구성하며, 사진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허구를 시뮬레이션하는 미디어임을 보여줍니다. 정연두의 작업은 다큐멘터리와 픽션, 현실성과 연극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람자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과 해석의 층위를 제시합니다. 본 글에서는 그의 작업이 지닌 사진적 연극성과 픽션의 전략을 중심으로, 동시대 미술에서 이미지와 이야기의 관계를 분석합니다.
연출된 사진 – 현실을 연기하는 픽션
정연두의 대표작 “Evergreen Tower”, “Bewitched”, “Wonderland” 등은 모두 실제 인물의 이야기, 꿈, 기억을 바탕으로 한 staged photography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인물의 서사를 수집한 뒤, 이를 대형 세트에서 연극적 장면으로 연출하고 사진으로 고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현실은 하나의 ‘무대’가 되고, 인물은 자신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배우’가 됩니다.
사진은 더 이상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도구가 아니라, ‘만들어진 현실’을 구성하는 허구의 장치가 됩니다. 이는 전통적 다큐멘터리 사진과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정연두는 시청각 예술이 갖는 허구성과 연극성을 적극 활용하여 사회적 리얼리티에 접근합니다.
예컨대 “Bewitched”는 사람들이 자신의 환상 속 직업을 연기하도록 요청한 뒤, 실제 무대 세트에서 이를 구현한 사진 시리즈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영웅, 스타, 과학자, 승무원이 되어 꿈을 연기하는 장면은 유쾌하지만 동시에 현실의 결핍과 욕망을 은유합니다. 정연두는 이를 통해 현실을 극화함으로써 현실의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시각 전략을 선보입니다.
사진과 연극, 삶과 무대의 교차
정연두의 작업은 연극적 장치와 무대미술, 조명, 세트 디자인 등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하나의 사진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포함한 총체적 예술로 확장됩니다. 그는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영화 세트처럼 공간을 재현하고, 참여자들과 협업하여 사진 속 픽션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방식은 ‘삶을 무대처럼 연기하게 만들고, 무대를 통해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전략’입니다. 관람자는 단지 사진을 보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참여자의 감정, 그리고 픽션을 구성한 배경을 함께 상상하게 됩니다. 이는 관람자의 상상력과 기억을 자극하며, 하나의 이미지를 넘어선 서사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Evergreen Tower”에서는 아파트 주민들의 일상을 정면 카메라로 촬영했지만, 그 배경은 모두 실제 아파트가 아닌 세트로 구성된 것입니다. 이는 한국 도시문화와 중산층 가족의 ‘정형화된 삶’에 대한 은유이자, 개인적 삶의 정체성과 주거 공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정연두는 무대적 설정을 통해 사진이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픽션적 서사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픽션의 힘 – 사회를 사유하는 이미지 전략
정연두는 픽션을 단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그는 “픽션이 진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말하며,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언어를 구사합니다. 이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더 이상 진실의 증거로 기능하지 않는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픽션을 통해 진실을 구성하고 전달할 수 있다는 반전의 논리를 제시합니다.
그의 작업은 사회의 고정된 정체성이나 역할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선과 감정의 층위를 제안합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꿈을 연기하면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고, 관람자는 이를 보며 또 다른 삶의 가능성과 사회적 구조를 상상하게 됩니다.
정연두는 픽션을 통해 현실을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장치로 삼습니다. 연극성과 staged photography를 통해 우리는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보고,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과 삶의 진정성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작업은 비판이나 풍자에 머무르지 않고, 관람자에게 공감과 상상을 열어주는 시적 전략으로 작용합니다.
정연두는 staged photography를 통해 사진의 연극성과 픽션성을 예술적 언어로 전환한 작가입니다. 그의 작업은 개인의 기억과 사회적 구조,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교차시키며, 관람자가 이미지 안에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도록 유도합니다.
정연두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연기된 삶과 구성된 현실을 담은 무대이자 픽션의 장입니다. 그는 연극적 연출과 협업을 통해 동시대인의 삶과 욕망을 시각화하며, 사진이 담을 수 있는 ‘진실’의 형태를 확장합니다. 그의 전략은 오늘날 이미지의 진실성과 픽션의 의미를 다시 사유하게 하는 중요한 예술적 실천입니다.